[신문기사]‘청사포의 정체성’ 해녀를 기록하다(국제신문2017.11.13)
‘청사포의 정체성’ 해녀를 기록하다
배은희 작가·최봉기 목사, 개발 상징 해운대서 명맥 잇는 해녀들의 삶 4개월간 취재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7-11-13 18:51:42
- | 본지 22면
- 사투리부터 콧등 시린 사연까지
- 생생한 글·사진 엮어 책 발간
- 마을의 어제와 오늘 담겨 의미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초고층 아파트가 위압적으로 물결치는 해운대 하늘 아래서 나이든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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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바다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멀지도 않은 거리에 초고층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진 최봉기·빨간집 제공 |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빨간집 펴냄·사진)는 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 말을 자세히 듣고, 그들이 쓰는 사투리 하나까지 살려가며 기록한 책이다. 1인 출판사 ‘빨간집’을 운영하는 배은희 씨가 글을 쓰고 최봉기 목사가 사진을 찍었다. 지난해 5월부터 4개월간 취재한 내용을 엮은 것으로, 에코에코협동조합 ‘마을 기록’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하다.
청사포 아랫마을 해녀들은 다 나이가 많다. 60대 중반만 돼도 “젊어서 물건(전복, 소라 등 해산물)을 많이 한다”며 부러움을 산다. 제주, 거제에서는 해녀가 인기라 해녀학교까지 만들어 명맥을 잇는다고 하는데 여기 청사포에서는 아직 남 일이다. “숨 안 쉬고 버는 돈 머 할라고. 우리 대에서 끝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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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일생의 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까. “아이고, 그런 돈(자식이 주는 용돈) 가지고 되나. 내가 벌이가 써야지”. 자식이나 남편에게 안 기대고 생계비를 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대를 이을 일은 아니라거나, 내 얼굴은 책에 안나왔으면 좋겠다거나 하며 부끄러운 듯 말한다. “해녀 보고 ‘버지기’라 안 했나. 옷 벗고 한다고. 해녀라 하믄 되는데 왜 버지기라 하냔 말이야.”
배은희 작가는 “제주 출신인 영도 해녀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해녀의 노동은 필요로 하면서도, 몸을 드러내놓고 일하는 그들을 천직이라 폄훼한 육지 사람들의 보수적인 시선을 감내하며 살아왔기에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덤덤한 문답에도 간간이 콧등이 시리다. 유쾌하고 장난 많은 한 해녀는 태풍이 방파제에 서 있던 남편을 쓸어갔다는 사연을 들려준다. 몸이 물살을 이기지 못해 줄로 몸을 꽁꽁 묶는다는 늙은 해녀들은, 오늘 벌어야 사니까 오늘도 물에 들어간다. 수술한 허리가 아파 남들보다 일찍 물질을 파한 해녀에게 동료들은 왜 벌써 끝냈는지 묻지 않는다. 서로 아픈 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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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 해녀 취재기를 들려주는 배은희 작가.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저자들은 어떤 의미를 담아 이 기록을 만들었을까. 배은희 작가는 말한다. “해녀는 청사포의 정체성이죠. 마을을 기록한다고 하면 옛날에 있던 것들, 사라진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도시를 이루고 있는 것과 그것의 변화를 기록해야 합니다. 그 마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며 살아왔는지도요. 그런 면에서 해녀는 중요한 기록 대상입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마을재생, 도시재생에 대해서는 ‘유감’이 있는 듯했다. “지자체는 마을을 문화관광콘텐츠로만 여깁니다. 청사포도 마을을 발전시킨다며 전망대도 만들고 해서 관광객이 늘었는데 해녀나 주민의 삶이 나아지진 않았어요.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이 먼저 좋아져야죠.”
대학원에서 ‘기록관리’를 공부하는 전공자로서 책 자랑도 살짝 덧붙였다. “‘물에 했다’는 물질했다, 해녀질 했다라는 뜻의 청사포 말입니다. 책에 설명된 다릿돌 이름들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말이죠. 지역민의 말을 통해 지역을 조사하는 구술작업을 했다고 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예쁜 삽화와 최봉기 목사의 사진이다. 그을린 채 웃는 해녀의 주름진 얼굴, 청사포 바다 사진이 넉넉하게 실려있다. 글이 채 말하지 못한 사연을 색감 따뜻한 사진으로 채웠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출처 : 국제신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71114.22022005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