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 센다이미디어테크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 분투기
발행정보
초판 1쇄 발행 2021년 1월 11일
지은이: 사토 토모히사, 카이 켄지, 기타노 히사시
옮긴이: 윤주
편집·기획: 계선이
번역·편집 검토: 이화숙
디자인: 스튜디오숲
펴낸이: 배은희
펴낸곳: 빨간집
사이즈: 127*200mm
쪽수: 344쪽
가격: 16,800원
ISBN: ISBN 979-11-969056-2-0(93300)
책 소개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구상과 설계부터 실행 과정, 성과와 과제까지!
풍부한 사례와 이론, 노하우를 들어 커뮤니티 아카이브 방법론을 소개하는 국내 최초 ‘커뮤니티 아카이브’ 안내서
이 책은 센다이미디어테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아카이브 플랫폼인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의 활동 기록이다. 센다이미디어테크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소재한 예술 문화 시설 및 평생 학습 기관으로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하자 같은 해 5월 3일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약칭 와스렌!)’를 개설했다.
와스렌!은 지진에 관한 기억 및 피해 복구, 부흥 과정을 기록하고 발신하는 플랫폼이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영상·사진·음성·텍스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기록하고 발신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실천과 연결되는 장이다. 또한 완성된 기록을 보존, 전승하여 이를 열람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디지털 아카이브로서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저자들은 와스렌!의 이러한 특징을 ‘풋내기 아카이브’라고 표현한다.
풋내기 아카이브에는 프로 아카이브와는 다른 풍부함, 특히 ‘기억의 결’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표준어와는 다른 풍부한 언어의 세계. 살아 숨 쉬는 생활의 기록.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아카이브 안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각. 풋내기 아카이브는 기록 대상과 기록자, 아카이브 되어 있는 정보와 아카이브 사용자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타인의 일로서의 역사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집단에 대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혹은 ‘역사를 만드는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
누구나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이 책은 와스렌!의 ‘영상 기록’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영상 분야에서는 수동적인 시청자, 소비자에 머무는 것을 지적하면서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하나이듯 영상을 직접 만들고 발신하는 행위가 영상 리터리시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문구처럼’ 쓰자고 제안한다.
카메라를 갖는다는 것은 읽고 쓰는 행위에 빗대어 말하자면 연필을 잡는 것과 같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는 동시에 감상문을 쓰는 등 스스로 표출하는 행위를 하면 일단 생각이 정리된다.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걸어 나와 세계와 만나면 또 다시 생각하는 행위가 운동을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갖게 되면 무언가를 기술하면서 내보이는 행위로 인해 다시 스스로 배우게 되는 순환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러한 학습 장치로서 와스렌!이 시작된 것이다. (책 속에서)
기존 아카이브가 이미 만들어진 기록을 아키비스트 같은 전문가가 효율적으로 정리,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와스렌! 아카이브는 참가자가 기록을 만들어가면서 서서히 형성된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기록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책에서는 이를 위해 와스렌이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를 공간 설계와 집기 구성 같은 하드웨어 측면부터 스태프의 역할과 태도, 영상 워크숍과 행사 등 소프트웨어 측면까지 상세하게 소개한다.
영상을 둘러싸고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자리를 설계할 필요가 있겠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remo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이제 영화관은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처럼 변했습니다. 문화 장치로는 세련되었지만 예전처럼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 관계된 사람들의 행동이 사전에 정해져 오히려 비좁아지고 질적으로 하락한 느낌입니다. 오래된 필름에서 특정 거리만 편집해 근처 주민센터 같은 데서 상영회를 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와 우와’하며 떠들썩해지겠죠. 미디어라고 하면 왠지 차갑고 ‘정보’를 발신하는 수단으로만 여기지만 그런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더욱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서)
또한 와스렌! 참여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기록한 영상의 형식과 내용이 어떠한지 등을 스태프와 참여자간 인터뷰를 토대로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가 만드는 영상의 의의, 지진재해의 기억을 영상으로 전달하는 다양한 표현법과 윤리의 문제, ‘영상 기록’과 ‘영상 예술’의 관계, 지진재해라는 사건에서 당사자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등 진지한 생각거리와 질문이 이어진다.
‘다들 “자신보다 심하게 재해를 입었을 상상 속의 타자”에 대한 배려’에서 ‘이재민’으로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진짜 이재민’과 자신을 구별하고 전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함구하는’ 것은 얼핏 도덕적이다. 그러나 ’“이재민”과 “자신”을 구별하는 위험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배려 때문에 다양한 경중의 재해 체험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어느 누구도 재해 체험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와스렌!은 참여자들이 맞닥뜨린 다양한 문제 상황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참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돌파하거나 질문하는 행위 자체를 지탱하는 것을 돕는다. 이러한 와스렌!의 사례는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주도하거나 참여자에게 지시하기 일쑤인 공공기관 주도하의 사업에서도 ‘참여자 중심주의’라는 확고한 방침과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프들 및 참여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커뮤니티 아카이브’가 생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자신의 생활 기록을 만들고 있다. 기록 대상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 그곳의 생활 속에 아카이브가 있다. 지진 재해라는 사건뿐 아니라 재해 전후 기록을 모두 포함한다.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궤적 또한 기록하며 현재도 아카이브가 동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풋내기 아카이브,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책 속에서)
와스렌!이 커뮤니티 아카이브를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다양한 지진재해 기록을 모으고 보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기록과 기억이라는 문제는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고난을 감내해온 한 인간이 말하는 작은 이야기의 네트워크’로서의 역사, 달리 말하면 ‘무수한 이야기의 네트워크로 짜인 한 장의 텍스타일’이야말로 본래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무릇 역사란 외부의 관찰자가 아닌, ‘어디까지나 거기에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와스렌!이 처음부터 ‘커뮤니티 아카이브’라는 개념에 착안하여 세부 구조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지진재해로 무너진 지역 사회의 부흥을 지원하고자 미디어테크의 사명과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커뮤니티 아카이브’라는 개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커뮤니티’도 ‘아카이브 전문가’도 없던 상황에서 저자가 말하듯 ‘전례가 없으니 실패할 수도 없지. 일단 해보자!’라는 태도로 시작한 일이었다. ‘커뮤니티 아카이브’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국내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일본의 특수한 사례를 소개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덧붙여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는 실제 와스렌에서 사용하고 있는 업무 서식을 수록했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개념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 및 도서, 학자, 예술가들 또한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공생공락의 도구’,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론, 발터 벤야민과 수전 손택의 예술론, 미디어테크 관장이기도 했던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 등 풍성한 참조 목록을 통해 ‘커뮤니티 아카이브’를 공부해보는 것도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커뮤니티 아카이브 만들기』는 커뮤니티 아카이브를 향한 ‘시행착오’ 자체이자 ‘끝나지 않은 활동’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을 통해 여정에 함께할 이들을 기다린다.
추천의 말
내가 있던 현장에는 카메라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나의 기록뿐 아니라 다양한 결의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면 미래의 누군가가 우리의 현재를 딛고 새로운 내일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와스렌!의 실천은 이런 아쉬움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할 자극제가 됐다. 나는 와스렌!의 실천이 담긴 이 책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를 열거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댄다. ‘풋내기’, ‘공생공락의 도구’, ‘여백과 틈’, ‘차이의 중요’, ‘차가운 미디어’, ‘어설픔’, 그리고 ‘커뮤니티 아카이브’.
박배일 \ 다큐멘터리 감독
주민들의 자발적인 아카이빙 경험이 많이 축적되어 있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이 책은 아주 많은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좌충우돌했던 경험과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어주고 있어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애초에 전례가 없으니 실패할 수도 없지. 해보자!”라는 말에 큰 공감을 느낍니다.
손동유 \ (협)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원 원장
기록은 시공간 너머 이해 당사자로부터 멀리 사건을 보낸다. 사람의 시간, 눈, 감정이 담긴 와스렌!의 독자적 지진 재해 기록은 한국 독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을, 슬픔 속에 기쁨을,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인용) 찾도록 독려하고 ‘우리’의 폭을 넓힌다.
안정희 \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저자
‘아카이빙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카이브를 제시하며 국내에도 적용 가능한 긍정적 모델을 보여준다. 상세한 방법론까지 일러주는 매우 실용적인 책! 무엇보다 기록이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은지 \ B-로컬 대표
차례
이 책에 대하여
들어가며 : 왜 커뮤니티 아카이브인가?
생각하기 편 : 플랫폼이 중요하다
제1장 센다이미디어테크와 remo
제2장 만드는 법[1] : 플랫폼 디자인하기
만들기 편 : 기록하기·운영하기·응원하기
제3장 기록 활동[1] : 개인이 만드는 영상 기록
제4장 기록 활동[2] : 당사자성 획득하기
제5장 만드는 법[2] : 아카이빙 커뮤니티 만들기
사용하기 편 : 미디어로서의 아카이브
제6장 기록 활동[3] : 와스렌!다운 기록의 특징
제7장 아카이브는 누구의 것인가?
나가며 : 공생공락의 도구를 향하여
본문 중에서
풋내기 아카이브에는 프로 아카이브와는 다른 풍부함, 특히 ‘기억의 결’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표준어와는 다른 풍부한 언어의 세계. 살아 숨 쉬는 생활의 기록.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아카이브 안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감각. 풋내기 아카이브는 기록 대상과 기록자, 아카이브 되어 있는 정보와 아카이브 사용자와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타인의 일로서의 역사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집단에 대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혹은 ‘역사를 만드는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쪽
카메라를 갖는다는 것은 읽고 쓰는 행위에 빗대어 말하자면 연필을 잡는 것과 같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는 동시에 감상문을 쓰는 등 스스로 표출하는 행위를 하면 일단 생각이 정리된다.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걸어 나와 세계와 만나면 또 다시 생각하는 행위가 운동을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갖게 되면 무언가를 기술하면서 내보이는 행위로 인해 다시 스스로 배우게 되는 순환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러한 학습 장치로서 와스렌!이 시작된 것이다. - 320쪽
‘고난을 감내해온 한 인간이 말하는 작은 이야기의 네트워크’로서의 역사, 달리 말하면 ‘무수한 이야기의 네트워크로 짜인 한 장의 텍스타일’이야말로 본래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무릇 역사란 외부의 관찰자가 아닌, ‘어디까지나 거기에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이다. - 235쪽
스스로 자신들의 생활 기록을 만들고 있다. 기록 대상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 그곳의 생활 속에 아카이브가 있다. 지진 재해라는 사건뿐 아니라 재해 전후 지역의 기록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궤적 또한 기록하며 현재도 아카이브가 동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 살고 있는 사람들, 방문하는 사람들, 미래의 아이들과 이곳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카이브는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풋내기 아카이브,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 315쪽
일리치가 ‘공생공락conviviality’이라는 말을 사용한 핵심은 개개인이 그것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이 동시에 주위 사람들과 환경 사이에 더 큰 풍요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탐구해야 할 것은 일방적·수동적으로 영상과 아카이브를 보는 사람/이용자이거나 역으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만드는 사람이 아닌, ‘상호의존 속에서 실현되는 자유’이며 그것이 다양한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 324쪽
지은이
사토 토모히사佐藤知久
1967년 도쿄 출생. 전공 분야는 문화인류학으로 교토시립예술대학 예술자원연구센터 전임 연구원/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예술과 사회운동의 접점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지평을 문화인류학적 시각과 방법으로 연구한다. 또 현대 예술 활동의 아카이브화, 변화하는 도시 공간의 기억과 계승에 대해 활동·연구하고 있다.
카이 켄지甲斐賢治
1963년 오사카 출생. 2011년 봄부터 센다이미디어테크 아트 디렉터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지자체의 문화 정책 실행, 기획, 운영 등을 담당한다. ‘remo(기록과 표현과 미디어를 위한 조직)’, ‘recip(지역문화에 관한 정보와 프로젝트)’, 그 외 예술과 미디어 관련 NPO에 소속되어 사회 활동으로서의 예술 활동에 임하고 있다. 2011년 예술선장·예술 진흥 부문 문부과학대신 신인상을 수상했다.
기타노 히사시北野央
1980년 홋카이도 출생. 공익재단법인 센다이시 시민문화사업단 주사. 2011년부터 센다이미디어테크 ‘3월 11일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센터’를 담당했다. <레코딩 인 프로그레스>(2015년), <지진 재해와 생활>(2016년) 등의 전시 큐레이션을 맡았다. 동일본대지진을 포함한 지역 문화 기록 활동, 이·활용의 장 만들기 등 협력 사업을 담당했다.
옮긴이
윤주
1980년생. 일본 도쿄에서 길지 않은 유학 생활 후 부산에서 교육학, 일어일문학, 문학치료 등을 전공했다. 여성시민운동단체 활동을 거쳐 현재 무소속젠더활동가, 빨간집 기록활동연구원, 상담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가로 살고 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기억’과 ‘기록’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